글25 운명이게하라 그들은 꽃이게 하라 사람들이 물주고 거름 주고 보호하고 찬사를 보내지만 한낱 흙화분에 갇힌 운명이게 하라 나는 차라리 못생기고 자신만만한 잡초가 되리라 독수리처럼 절벽에 매달려 높고 험한 바위들 위에서 바람에 흔들리리라 돌을 깨고 나와 광활하고 영원한 하늘의 광기와 마주하며 살리라 시간의 산맥 너머로 혹은 불가사의한 심연 속으로 내 영혼, 내 씨앗을 날라다 주는 고대의 바닷바람에 흔들리리라 비옥한 골짜기에 무리 지어 자라며 찬사를 받고 길러지다가 결국은 탐욕스런 인간의 손에 뽑혀 버리는 좋은 향기가 나는 꽃이기보다는 차라리 모두가 피하거나 눈에 띄지 않는 잡초가 되리라 감미롭고 향기로운 라일락이 되기보다 차라리 강렬한 초록풀 내음을 풍기리라 강하고 자유롭게 홀로 설 수만 있다면 차라리 못생기고 자신만만한.. 2022. 2. 16. 삶을 사랑하는 것 삶을 사랑하는 것 도저히 감당할 자신이 없을 때에도 소중히 쥐고 있던 모든 것이 불탄 종이처럼 손에서 바스러지고 그 타고 남은 재로 목이 멜지라도 삶을 사랑하는 것 슬픔이 당신과 함께 앉아서 그 열대의 더위로 숨 막히게 하고 공기를 물처럼 무겁게 해 폐보다는 아가미로 숨 쉬는 것이 더 나을 때에도 삶을 사랑하는 것 슬픔이 마치 당신 몸의 일부인 양 당신을 무겁게 할 때에도 아니 그 이상으로 슬픔의 비대한 몸집이 당신을 내리누를 때 내 한 몸으로 이것을 어떻게 견뎌 내지, 하고 생각하면서도 당신은 두 손으로 얼굴을 움켜쥐듯 삶을 부여잡고 매력적인 미소도 매혹적인 눈빛도 없는 그저 평범한 그 얼굴에게 말한다 그래, 너를 받아들일 거야 너를 다시 사랑할거야 2022. 2. 14. 자유 자유_김남주 만인을 위해 내가 일할 때 나는 자유 땀 흘려 함께 일하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만인을 위해 내가 싸울 때 나는 자유 피 흘려 함께 싸우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만인을 위해 내가 몸부림칠 때 나는 자유 피와 땀과 눈물을 나눠 흘리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사람들은 맨날 겉으로는 자유여, 형제여, 동포여! 외쳐대면서도 안으로는 제 잇속만 차리고들 있으니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무엇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제 자신을 속이고서 창작과비평사 2022. 2. 13. 나의 겨울은 나의 겨울은 잠들지 않으리 꿈꾸지 않으리 말라붙은 나뭇잎 사이로 낮달이 하얗게 떨고 있어도 나의 사랑은 떨지 않으리 북서풍 회오리치는 광장에 서서 뜨겁게 부른 지난 여름의 노래만으로도 이 겨울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으리 거짓과 기만과 위선이 춤을 추고 사악과 음모와 배신이 웃음 짓는 이 얼어붙은 거리에서 잠들지 않으리 아무도 잠들지 않으리 나의 사랑도 꿈꾸지 않으리 2022. 2. 11. 이전 1 2 3 4 5 6 7 다음